좋은 삶은 내가 이름을 붙인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기억이다. 외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그 시간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경험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밖에서 봤을 때는 외모, 소유, 사회적 지위가 먼저 보인다. 우열을 가리거나 수량화된 삶은 늘 평가의 대상이 된다. 어떤 조건도 좋은 삶의 일부가 될 수는 있으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좋은’이라는 말 또한 결국 ‘평가’보다는 ‘느낌’을 더 반영하기에, 내부에서 경험되는 삶에 대한 느낌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좋은 삶을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귀찮고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도 들지만, 커피 한 잔이면 쉽게 기분이 좋아지고 남편의 자는 얼굴을 보면 미소가 나오는 삶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잔잔하게 미소 짓고 있음을 느낀다.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삶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감정이 깊어짐에 따라 몸이 무거워짐을 느끼는 순간조차 경이롭게 느껴진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 소리를 배경 삼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과분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리고 쉬는 날 보고 싶은 영화를 떠올리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 나는 매 순간 내가 어떻게 존재할지 선택할 수 있고, 내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존재를 또렷하게 느끼는 순간에 자주 눈물이 난다. 슬프거나 외로운 것은 아니다. 눈물에 묻어난 느낌은 반갑고 벅차오르며 감격스럽다는 감정에 더 가깝다. 어제도 만난 나인데, 오늘 만나도 오랜만에 만난 듯 눈물이 난다.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시작으로 감정을 느끼고 말을 고르는 시간이 즐겁고 감사하다. 나는 나를 꽤 좋아하는 것 같다. 이렇게 적고 나니, 또 한 번 가슴이 울컥한다. 나의 어떤 점이 좋다거나 무엇이 마음에 든다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나는 나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고 있다.
사실 나는 매우 평가적이고 분석적인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다. 나에 대해서도 자주 검열하고 수정하며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러다 머리가 아프고 힘들어 방전된 채 무기력해졌다가, 나를 위로하고 돌보며 다시 힘을 내어 내 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성취나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무언가를 갖추고 있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인식 때문이다. 내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성장하고 발달해 가는 존재이며, 완숙을 지향하는 존재라는 느낌이 나는 참 좋다. 그러다 보니 평가와 분석에 대한 시각도 함께 발달해 가는 것 같다. 이전에는 옳고 그름을 평가하고, 훌륭함과 볼품없음의 근거를 분석했다. 그러다 모든 평가와 분석은 나와 타인을 옥죄는 것이라 치부하며, 기준이 되는 것들을 무시하고 무너뜨리려 했다. 그 어떤 평가와 분석도 없어야 사람이 온전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 방식이 효과적인지를 분석한다. 이전에는 평가와 분석 뒤에 상처가 남았다면, 지금은 그것을 통해 명징함을 경험한다. 앞으로는 또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게 될지 기대된다.
다시 좋은 삶으로 돌아와서. 한때는 내가 내 시간을 좋은 경험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좋은 삶이라 생각했고, 내 욕구와 감정을 충족시키는 활동과 행동으로 시간을 채우는 것이 해답이라고 믿었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내 시간을 함부로 타인에게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심지어 시간을 흘려보내듯 사는 사람들을 속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조금의 틈이 생긴 시각으로 바라보면, 좋은 삶이란 내가 살아온 시간에 다정하게 의미를 부여한 시간들의 모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삶과 마음속 이야기를 듣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내 앞의 존재가 풀어낸 이야기와 부둥켜안고 있는 삶에 대해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삶은 좋은 삶이고,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다. 우리 각자가 좋은 사람임을 느끼고, 각자의 삶이 좋은 삶임을 인정해 주는 말들이 울리는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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